이제는 온 가슴이 울렸다 앞을 쏘아보던 조정혜는 우측의 깜박이를 켜고는 사차선 도로로 빗금을 긋듯이 오른쪽으로 달려 나아갔다 이차선과 삼차선 사차선의 차들이 제각기 브레이크를 밟아 그녀에게 길을 양보했다 사차선을 달리던 택시 한 대가 하마터면 조정혜의 승용차 옆구리를 들이받을 뻔하다가 기겁을 하듯 브레이크를 밟고는 삼차선으로 비켜 지나갔다조정혜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길 옆의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차 안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앞을 쏘아본 채로 조정혜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따뜻한 느낌이 드는 눈물 줄기가 볼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이내 차가워졌다 눈을 깜박여 눈에 고인 눈물을 털어 내었으나 그것은 끊임없이 솟아 올랐다 입술 끝에도 눈물이 걸려 간지러웠다 혀를 내밀어 물기를 빨아들였다 찝찔한 맛이 느껴졌다제23장 베일 속의 남자에릭은 판매장의 2층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섰다 7 8명의 사무실 직원들이 분주히 일을 하고 있는 사이를 지나 사장실 문을 열었다회색의 단정한 양복 차림을 한 조그만 사내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에릭을 보고는 몸을 일으켰다할리드 씨 오래 기다렸습니까손을 내밀며 에릭이 물었다아니오 온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볼에서부터 턱 밑으로 새까만 수염이 탐스럽게 난 그가 대답했다바쁘시군요 판매장이 아주 훌륭합니다 물품도 풍부하고자리에 앉자 할리드가 말했다 머리를 끄덕이며 에릭은 잠자코 웃어보였다 할리드는 레바논 국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근거지를 리마솔에 둔 무역상이었다 연간 20만 불 정도의 물량을 베이루트로 들여와 때로는 두어 배 남기는 장사를 하고 또 어떤 때는 본전도 건지지 못하는 움퍽짐퍽한 사업을 해오고 있었다 그 나름대로 시장 상황을 판단하여 물품을 들여오지만 회교 세력들이나 정부측에서 갑작스럽게 같은 품목을 대량으로 들여오는 시기와 겹치는 경우가 생기면 장사는 죽을 쑤는 것이다그래 무슨 일입니까소파에 등을 묻고 피로한 듯 목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면서 에릭이 물었다아 네 다름이 아니라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품이 재고로 남았거나 들여올 물품의 구입을 부탁할 것이라고 에릭은 짐작하고 있었다 에릭은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판매장 운영에 2년 가까운 경륜을 쌓았고 이제는 두 개의 판매장에 70명이 넘는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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